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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뭘까 시리즈 Ⅵ] 위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옮겨갈 뿐입니다

  • 작성자 사진: 이세인
    이세인
  • 7월 2일
  • 4분 분량

✒️ 위험을 '제거했다'는 말은 정말 위험이 사라졌다는 뜻일까요? 이 글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 위험이 실은 가장 약한 곳으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사실을, '위험의 외주화'라는 한국 산업현장의 오래된 문제를 통해 살펴봅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도급·하청 구조 안에서 안전을 관리하는 원청 담당자

  •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싶으신 분

  • 위험성평가에서 '제거'했다고 적은 위험이 실제로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셨던 분



1986년, 위험은 민주적이라는 선언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위험사회』라는 책을 펴냅니다. 그의 통찰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근대는 부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위험도 함께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위험은 국경도 계급도 넘어선다.


공장의 매연도, 방사능도, 부자라고 피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벡은 이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습니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공교롭게도 책이 나온 그해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졌습니다. 국경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진 방사능 앞에서, 벡의 말은 예언처럼 들렸습니다. 위험은 모두의 것이 되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산업 현장으로 눈을 돌리면, 위험은 그렇게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같은 공장, 같은 사업장 안에서도 위험은 고르게 퍼지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흐릅니다. 자, 위험은 정말 모두에게 공평할까요?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옮겨갑니다


위험성평가에서 가장 좋은 통제는 위험을 아예 없애거나(제거), 덜 위험한 것으로 바꾸는 것(대체)입니다. 이론적으로 가장 윗자리에 있는 통제 방법입니다.


그런데 '제거'에는 함정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위험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험한 공정을 외부 업체에 통째로 넘기면, 우리 평가표에서 그 위험은 깨끗이 지워집니다. 하지만 위험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공정을 떠안은 다른 누군가의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험의 외주화'입니다.

💡 위험의 외주화 위험한 작업을 도급·하청·파견 등 외부 노동에 넘김으로써, 위험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조직 바깥으로 이전하는 것. 한국 산업현장에서는 '죽음의 외주화'라고도 불려 왔습니다.

앞선 IV편에서 우리는 위험이 우리 행동에 반응한다고 했습니다. 안전장치를 더하면 사람은 그만큼 더 과감해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위험은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자리를 옮기기도 합니다. 우리가 통제했다고 믿는 위험이, 실은 시야 밖으로 이동한 것일 수 있습니다.



위험은 왜 약한 곳으로 흐를까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위험도 저항이 가장 약한 곳으로 흐릅니다. 왜 하청이 그 약한 곳이 되는지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비용입니다. 위험한 일을 외부에 맡기면, 사고가 났을 때 따라오는 비용 — 보상과 평판, 법적 책임 — 도 함께 바깥으로 나갑니다. 위험을 줄이는 데 돈을 쓰는 것보다, 위험을 넘기는 편이 쌉니다.


둘째는 정보와 시간입니다. 하청은 그 작업의 위험을 충분히 평가할 정보도, 대비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저가로 일을 따낸 업체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셋째는 권한입니다. 위험을 본 사람에게 그것을 멈출 힘이 없습니다. 거부하면 다음 계약이 없을지 모르는 위치에서는, 위험하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렵습니다.


이 흐름은 숫자로도 드러납니다.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2016~2017년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셋 중 하나가 하청 노동자가 피해를 입은 곳이었습니다. 발전소를 들여다보면 더 선명합니다. 원청과 하청의 인원이 거의 반반인데도, 재해는 80% 넘게 하청에 몰립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위험은 한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통계 뒤에는 실제 죽음이 있습니다. 2016년 서울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던 열아홉 살의 용역업체 노동자가, 2018년 한 화력발전소에서 두 명이 함께해야 할 작업에 홀로 투입된 입사 석 달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 죽음은 위험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흘러간 위험을 되짚는 일


벡은 위험에 부메랑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밖으로 던진 위험이 돌고 돌아 결국 던진 사람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법은 이 부메랑을 제도로 만들었습니다. 2018년의 죽음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것입니다.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2020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핵심은 위험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 원청에게 책임을 지운 데 있습니다. 예전에는 원청의 안전 책임이 사업장 안 22개 위험장소로만 한정되었지만, 개정법은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장소 전반으로 그 범위를 넓혔습니다. 또 도금이나 중금속을 다루는 일부 유해·위험 작업은 사내 하도급 자체를 금지했습니다. 위험한 작업의 도급을 막는 조항이 이 법에 담긴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도급이나 위탁관계라 하더라도, 그 작업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을 확보할 의무를 지웠습니다.


법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외주를 줬으니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위험을 넘겼더라도 책임은 흐름의 끝까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직하게 덧붙이면, 이 법들로 위험의 외주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법이 한 일은 '위험을 방치하는 외주화'를 줄인 것이지, 위험한 일을 나눠 맡는 구조 자체를 없앤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원청이 그 흐름을 직접 들여다보는 일이 여전히 남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이번에도 거창한 제도 변경 대신, 다음 위험성평가에서 5분짜리 점검 하나를 권합니다. '제거' 또는 '대체'로 통제했다고 적은 위험을 다시 보면서, 이렇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 위험을 우리가 정말 없앤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넘긴 걸까?"


앞선 V편에서 우리는 통제조치 뒤에 '남는 위험'을 적어보자고 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붙습니다. 남은 위험만이 아니라, 넘긴 위험도 적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평가표에서 사라진 위험이 어느 현장으로 갔는지를요.


도급을 준 공정이 있다면, 그 위험을 하청에게만 맡겨 두지 말고 원청이 함께 들여다보는 자리를 만들어 보십시오. 가장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정작 가장 적은 정보와 권한을 가진 채 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통제는 위험을 없애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칫 위험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우리 조직의 안전을 원청과 하청을 아우르는 하나의 그림으로 보고 싶으시다면, 세이프티온솔루션의 통합 안전문화 진단이 그 출발점이 되어 드릴 수 있습니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우리 위험성평가표에서 '제거'나 '대체'로 처리한 위험 중, 실제로는 외부 업체로 넘어간 것이 있나요? 그 위험은 지금 누구의 현장에 있나요?

  • 우리 사업장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은 그 위험을 평가하고 거부할 정보와 권한을 충분히 가지고 있나요?

  • 도급 공정의 위험을 우리는 하청에게 맡겨두고 있나요, 아니면 원청이 함께 들여다보고 있나요?

  • 하청 노동자가 "이 작업은 위험하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우리에게 닿는 통로가 있나요?

  • 우리는 사고가 났을 때 '누구 소속인가'를 먼저 묻나요, 아니면 '무엇이 위험했는가'를 먼저 묻나요?


〔참고문헌〕

  • Beck, U. (1992). Risk Society: Towards a New Modernity. Sage. (독일어 원서 1986)

  •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 (2016–2017년 중대재해 사업장 통계).

  • 산업안전보건법. 법률 제16272호, 2019년 전부개정, 2020년 시행.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2021년 제정, 2022년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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