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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뭘까 시리즈 Ⅳ] ABS 브레이크를 달았더니 사고가 늘었다는데?

  • 작성자 사진: 이세인
    이세인
  • 6월 1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월 19일

안전장치를 하나 더 달면 위험은 그만큼 줄어든다. 우리가 의심 없이 믿는 이 전제를, 1980년대 뮌헨의 한 택시 실험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글은 사람이 안전해졌다고 느끼면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그 보상이 언제 일어나고 언제 일어나지 않는지를 살펴봅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안전장치와 보호구를 늘렸는데도 사고가 기대만큼 줄지 않아 의아하셨던 분

  • 새 설비를 들인 뒤 현장의 행동이 미묘하게 달라진 걸 느끼신 분

  •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의 근거를 데이터로 확인하고 싶으신 분



1980년대 뮌헨, 택시 절반에만 브레이크를 바꿨더니


이번에도 장면 하나로 시작하겠습니다.


1980년대 독일 뮌헨. 한 택시 회사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고가 줄지 않아 보험료 부담이 컸던 것입니다.


회사는 한 가지 조치를 택했습니다. 보유한 택시의 절반에 당시로서는 첨단이었던 ABS 브레이크를 달았습니다. 급제동 상황에서 바퀴가 잠기는 것을 막아 차를 더 잘 제어하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기존 브레이크 그대로 두었습니다.


ABS 차량 사고 연구 (독일 뮌헨)
ABS 차량 사고 연구 (독일 뮌헨)

상식적인 예상은 분명했습니다. ABS를 단 차량의 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3년 뒤 결과는 예상과 어긋났습니다. ABS 차량의 사고는 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약간 늘었습니다.


연구를 이끈 심리학자 제럴드 와일드(Gerald Wilde)는 이유를 찾기 위해 관찰자를 태웠습니다. 기사는 승객이 관찰자인 줄 몰랐고, 관찰자는 자기가 탄 차가 ABS 차량인지 몰랐습니다. 이중맹검이었습니다.


관찰 결과 ABS 차량의 기사들은 더 빠르게 코너를 돌았고, 차선 유지가 더 부정확했으며, 앞차와의 거리를 더 좁혔고, 더 늦게 제동했습니다. 브레이크가 좋아진 만큼, 그들은 더 거칠게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마음속에는 위험 온도조절기가 있습니다


와일드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이 정도면 받아들일 만하다'고 여기는 위험의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 순간 지금 느끼는 위험을 그 기준과 견주며, 둘 사이의 차이를 좁히려 합니다.


느끼는 위험이 기준보다 낮아지면, 사람은 그 여유분을 더 빠르고 편한 행동으로 채웁니다.


ABS 기사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브레이크가 좋아져 위험이 낮아졌다고 느끼자, 받아들일 만한 수준까지 위험을 다시 끌어올린 것입니다. 더 빠른 속도라는 이득과 맞바꾸면서 말입니다.


집을 따뜻하게 데우면 보일러가 멈추듯, 안전해졌다고 느끼면 조심하던 행동이 풀립니다. 마음속 온도 조절기가 작동한 셈입니다.


💡 위험 항상성(Risk Homeostasis) / 위험 보상(Risk Compensation) 사람은 받아들일 만한 목표 위험 수준을 가지고 있어서, 환경이 더 안전해지면 그만큼 더 위험한 행동으로 보상해 그 수준을 유지하려 한다는 이론. 와일드는 1982년 Risk Analysis에 이 이론을 정리했고, 1994년 저서 『Target Risk』에서 자세히 풀었습니다.

이런 장면은 도로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전벨트를 매면 더 빠르게 달린다는 관찰, 자전거 헬멧을 쓰면 더 과감하게 탄다는 관찰이 오래 보고되어 왔습니다. 안전장치가 사라지게 만든 위험의 일부를, 사람이 행동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안전장치를 달면 늘상 위험보상 심리가 작동하는 걸까요


다만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합니다. 이 이론을 너무 믿어도 곤란합니다.

안전장치를 더해도 사람이 그만큼 더 과감해져 사고는 결국 안 줄어든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전벨트를 비롯한 차량 규제가 자리 잡은 뒤 교통사고 사망률은 꾸준히 내려갔습니다. 보상이 안전장치의 효과를 다 깎아먹지는 못한 것입니다.


맞는 부분은 안전장치의 효과 일부가 불안전한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늘 그런 게 아니라, 어떤 작업에서는 발생하고 어떤 작업에서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전 연구자 제임스 헐룬드(James Hedlund)는 그 조건을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보상은 다음 네 가지가 갖춰질수록 잘 일어납니다.


  • 보이는가 — 안전조치가 사용자 눈에 또렷이 보일 때

  • 체감되는가 — 그 조치 덕분에 안전해졌다고 실제로 느낄 때

  • 바꿀 동기가 있는가 — 더 빠르게, 더 편하게 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 때

  • 내가 통제하는가 —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여지가 있을 때

이 네 가지가 모두 켜진 작업일수록, 우리가 더한 안전의 일부는 더 과감한 행동으로 흘러나갑니다. 반대로 이 조건들이 약한 작업에서는 보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안전장치의 효과가 고스란히 남습니다.


그러니 질문은 "보상이 일어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우리 작업에서 이 네가지 조건이 켜져 있어 불안전행동을 할 이유를 만드는가"하는 점입니다.


현장에서 안전장치가 알람을 끄는 순간 살피기

이 이야기를 현장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추락방지대를 채워 주었더니, 작업자가 예전보다 더 가장자리에 가까이 다가섭니다.


협착 방지 센서를 믿고, 멈추지 않은 설비에 손을 조금 더 깊이 넣습니다. 가스 검지기를 들고 있으니, 환기 시간을 슬그머니 줄입니다.


추락방지대와 작업자
추락방지대와 작업자

모두 헐룬드의 네 조건이 잘 들어맞는 장면입니다. 장치가 눈에 보이고, 안전해졌다고 체감되고, 더 빨리 끝내고 싶은 동기가 있고,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안전장치를 비난하는 글이 아닙니다.

II편에서 평가표를 버리자는 말이 아니었고 III편에서 누구의 인식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었듯, 추락방지대도 센서도 검지기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장치 하나를 더했다고 위험이 그만큼 줄었다고 셈하는 순간, 우리는 더이상 위험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안전장치의 순효과를 지키려면, 환경만 바꿔서는 부족합니다. 장치를 더하는 동시에 '받아들일 만한 위험 수준' 자체를 함께 낮춰야, 더해진 안전이 행동으로 새어 나가지 않고 남습니다.


장치는 위험을 낮추고, 문화는 기준을 낮춥니다. 둘은 항상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이번에도 거창한 제도 변경 대신, 5분짜리 점검 하나를 권합니다.

최근에 새로 들인 안전장치나 설비, 보호구를 하나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팀과 이렇게 대화해 보십시오.


"이게 생기고 난 뒤에, 우리가 예전보다 조금 더 과감해진 행동이 있습니까?"

답이 잘 나오지 않으면, 헐룬드의 네 조건을 짚어보면 됩니다.

그 장치가 눈에 잘 보입니까. 덕분에 안전해졌다고 느낍니까. 더 빨리 끝내고 싶은 동기가 있습니까.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까.


네 가지가 켜져 있다면, 그 작업은 보상이 일어나기 쉬운 자리입니다. 거기서부터 대화를 시작해 보십시오.


장치를 들이는 일과, 그 장치를 믿고 행동이 풀리지 않게 기준을 다잡는 일은 다른 일입니다.


앞의 것은 설비가 하고, 뒤의 것은 문화가 합니다.


우리 조직이 새 장치나 로봇과 같은 도구를 들일 때 '받아들일 만한 위험 수준' 자체를 함께 다루고 있는지 점검하고 싶으시다면, 세이프티온솔루션의 교육이 그 출발점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최근 우리 현장에 새로 들어온 안전장치나 보호구가 있나요? 그것이 생긴 뒤 작업 속도나 방식이 미묘하게 달라지지는 않았나요?

  • 우리가 "이 장치가 있으니 괜찮다"고 믿고 예전보다 덜 조심하게 된 작업이 있나요?

  • 헐룬드의 네 조건(보이는가·체감되는가·동기가 있는가·통제할 수 있는가)에 모두 해당하는, 보상이 일어나기 쉬운 작업은 무엇인가요?

  • 우리 조직은 안전장치를 도입할 때 그 효과를 '설치했다'로 셈하나요, 아니면 '행동이 어떻게 달라졌나'까지 확인하나요?

  • 장치(환경)와 함께 우리 팀의 '받아들일 만한 위험 수준'을 낮추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대화나 약속은 무엇일까요?


〔참고문헌〕


  • Peltzman, S. (1975). The effects of automobile safety regulation.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83(4), 677–725.

  • Wilde, G. J. S. (1982). The theory of risk homeostasis: Implications for safety and health. Risk Analysis, 2(4), 209–225.

  • Wilde, G. J. S. (1994). Target Risk: Dealing with the danger of death, disease and damage in everyday decisions. PDE Publications.

  • Hedlund, J. (2000). Risky business: Safety regulations, risk compensation, and individual behavior. Injury Prevention, 6(2), 82–90.

  • Rasmussen, J. (1997). Risk management in a dynamic society: A modelling problem. Safety Science, 27(2/3), 18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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