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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하는 안전문화 (2) : 잡담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안전문화를 만듭니다

  • 작성자 사진: sam400049
    sam400049
  • 4월 28일
  • 5분 분량

✒️ 이 글은 현장의 위험에 관한 경험을 주고 받으며 함께 안전을 만들어 가는 문화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를 안내합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매년 안전 교육을 반복하는데도 현장은 그대로인 것 같아 답답한 분

  • 좋은 안전 노하우가 옆 팀까지 건너가지 못한다고 느끼는 분

  • 공식 회의가 아닌, 진짜 현장의 목소리가 오가는 자리를 만들고 싶은 분



매뉴얼에 없는 답은, 어디서 나올까요?


1980년대 후반, 미국 Xerox사의 복사기 수리 기사들에게는 누구보다 두꺼운 매뉴얼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본사에서 만든 정비 절차서가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작 까다로운 고장은 그 매뉴얼에서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수리기사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답은 의외의 장소에 있었습니다. 출근 전에 들르는 카페테리아의 아침 식사 자리.


수리 기사들은 그곳에서 습관처럼 모여, 어제 다녀온 사이트에서 마주친 증상을 풀어놓고 동료의 경험을 얹어 가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회의도 아니고 교육도 아닌 그저 잡담처럼 보이는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는 가장 값진 정비 노하우가 오고 갔습니다.


이 장면을 끈질기게 관찰한 인류학자 줄리안 오어(Julian Orr)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수리 기사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부르던 표현이 있었습니다.


🗣️ "We tell war stories." — 우리는 전쟁 같았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War story를 직역하면 "전쟁 이야기"지만,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려는 무용담과는 결이 다릅니다. 현장에서 진땀 흘리며 헤쳐 나온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풀어놓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지난주에 ○○ 사이트에서 이런 증상이 있었어" 하고 운을 떼면, 듣던 동료가 "어, 그거 나도 비슷한 거 본 적 있어. 나는 처음엔 ○○를 의심했었거든" 하며 자기 경험을 더합니다. 같은 사례가 두세 명을 거치는 동안, 매뉴얼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던 노하우가 모두의 머릿속에 새롭게 자리를 잡습니다.


비슷한 시기, 에티엔 웽거(Etienne Wenger) 와 진 레이브(Jean Lave) 는 이 장면에 이름을 붙입니다. 바로 CoP(Community of Practice, 실천공동체) 입니다.


💡 CoP(Community of Practice, 실천공동체) :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더 나은 실천 방법을 만들어 가는 비공식 학습 모임 - Wenger, McDermott & Snyder (2002)

쉽게 말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기 현장의 war story를 주고받는 자리" 입니다. 부서가 다르고 직급이 달라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CoP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장의 진짜 경험담, War Story를 나눌 때 학습하는 안전문화가 만들어지는 이유


매뉴얼은 정답을 줍니다. 위험 상황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매뉴얼은 필수적이지만, 매뉴얼만으로는 시시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현장의 위험에 모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매뉴얼의 빈틈을 빼곡히 채워주는 것이 바로 사람들 사이에 주고 받는 war story, 즉 현장에서의 치열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War Story는 현장의 감각이 함께 전해집니다. 사고는 언제나 그날의 시간·날씨·작업량·인원·분위기 같은 구체적인 조건들 위에서 일어납니다. 매뉴얼은 그 조건들을 걷어내고 보편적인 원칙을 추출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전달될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다만 현장에는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여러 조건들이 겹칠수록 판단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데, war story는 위험했던 상황 속의 다양한 변수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습니다.


📌 기억에 오래 남아, 학습이 휘발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뇌는 목록보다 이야기를 압도적으로 잘 기억합니다. "7번째 안전 수칙을 위반하지 마시오" 보다 "○○ 선배가 그날 OO 절차를 건너뛰었다가 어떻게 됐는지 들었어?" 가 훨씬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 듣는 사람이 참여자가 되어, 학습이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퍼집니다. War story는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도 비슷한 거 본 적 있어" 라며 자기 이야기를 얹게 만듭니다. 그 순간 듣던 사람도 학습의 주체로 바뀌고, 한 사람의 경험이 자리에 모인 모두의 경험이 됩니다.


누군가의 경험이 공유되고, 듣는 사람의 관점이 바뀌고, 그것이 다음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과정은 학습하는 안전문화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CoP는 그 과정이 우연히 일어나길 기다리는 대신, 정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자리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현장 경험을 나누고 더 안전한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CoP의 세가지 조건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곳이니까, 안전 회의도 CoP라고 할 수 있나요?” ”회식 자리에서도 위험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일 때가 많은데 이것도 CoP인가요?”


대부분의 경우 공식 안전 회의도, 회식 자리도 CoP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CoP가 작동하려면 Domain(공통 관심), Community(신뢰 관계), Practice(공유된 실천)이 동시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CoP의 세가지 요소

의미

Domain(공통 관심)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제 상황과 고민

Community(신뢰 관계)

"여기서는 말해도 괜찮다" 고 느낄 수 있는 정서적 토대

Practice(공유된 실천)

공유한 이야기와 노하우가 흩어지지 않고 누적된 약속과 실천


공식 안전 회의는 같은 위험을 다룬다는 공통 관심은 분명히 있지만, 발언자가 정해져 있고 잘못 말했다가는 책임이 따라오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시행착오와 실수를 꺼낼 수 있을 만큼의 신뢰가 자라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회식이나 동호회는 신뢰는 살아 있지만, 좋은 이야기가 그날 자리와 함께 흩어집니다. "우리만의 더 나은 방식을 함께 만들어 가겠다" 는 약속과 구체적인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직에서 CoP를 시작하기 위한 5가지 현실적인 방법


✅ 작게 시작하기 — 5명이면 충분합니다

처음부터 30명을 모으면 발언자는 3명, 듣는 사람은 27명이 됩니다. 8~12명 사이가 가장 활발하다고 알려져 있고, 첫 자리는 5명으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 가볍게 만들기 — "회의실 1시간" 대신 "커피 한 잔 20분"

"매달 60분 회의실"을 잡는 순간, CoP는 또 하나의 회의가 됩니다. 비공식적이지 않은 비공식 모임은 참여율이 저조해집니다. 대신 이런 형태를 권장합니다.

  • 점심 직후 20분, 휴게실 한쪽에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

  • 출근 직후 15분, 어제 본 한 장면을 공유하는 자리

  • 현장을 함께 한 바퀴 돌면서, 보이는 위험을 두고 이야기하는 자리


✅ 무용담 말고, 현장담

매뉴얼 낭독회가 되면 역시나 참여율이 저조해 집니다. 누군가가 직접 겪은 일**(**아차사고, 구성원과의 소통 경험 등)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랑하는 이야기보다 막혔던 이야기, 헛짚은 이야기가 우리의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 심리적 안전감 확보하기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누구를 평가하거나 징계하는 데 쓰이지 않습니다. 다음 사고를 막는 데만 씁니다."와 같은 선언문을 반복적으로 상기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막혔던 이야기를 평가받는다고 느끼는 자리에서는 war story를 꺼내기 어렵습니다.


한 줄만 남기기

회의록을 빼곡히 쓰려고 하면 사람들은 말을 아낍니다. 대신 자리가 끝나기 직전, 오늘 나눈이야기에서 모두가 동의한 한 줄만 함께 정리해 보세요. 예를 들어, "교대 직전 30분이 가장 취약한 시간”과 같은 한 줄이 점점 쌓이다 보면 우리 현장만의 노하우가 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거창하게 새 모임을 만들기 전에, 이미 우리 조직 안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CoP를 먼저 찾아보는 일을 권합니다. 휴게실에서 나누는 잡담, 점심 식사 자리, 작업 정리 중에 짧은 대화 — 이런 자리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치열한 안전 이야기가 이미 흐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자리를 알아차리고, 가능하면 한 번 끼어 들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갑자기 보고서를 요구하거나 리더를 참여시키지 말고, 시간과 공간만 보호해 주세요. 거기서 오고 가는 이야기가 우리 조직이 가장 활발히 학습하고 있는 영역이고, CoP의 출발점입니다.


만약 이런 자리가 우리 조직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발언이 곧 책임으로 돌아오는 분위기, 부서 간 정보 공유를 가로막는 평가 구조, "괜한 말 했다가 일이 커진다" 는 누적된 학습 경험이 문화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예요. 이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모임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어떤 안전문화가 학습을 막고 있는지 짚어보는 것입니다. 막힌 지점을 먼저 풀고 나서야, 첫 CoP가 어디서·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우리 조직에서 같은 사고가 부서·팀만 바꿔 반복된 사례가 있었나요? 그때 정보가 어디까지 도달했고, 어디서 멈췄나요?

  • 지금 우리 조직에서 가장 강한 임팩트를 가진 war story 는 무엇인가요? 그 이야기를 누가 알고 있고, 누가 모르고 있나요?

  • 우리는 사고가 났을 때만 모이나요, 아니면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꺼낼 수 있는 자리가 있나요?

  • 우리의 안전 회의는 Domain(공통 관심), Community(신뢰 관계), Practice(공유된 실천) 중 어떤 요소가 강한가요?

  • 부서가 아니라 "같은 위험을 다루는 사람" 으로 묶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5명은 누구인가요?

  • 우리 조직 안에 이미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CoP 가 있다면 어디인가요?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고 있나요, 아니면 모른 채 지나치고 있나요?

  •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이 "여기서 한 말은 안전하다"고 느끼려면, 어떤 약속이 명시적으로 있어야 할까요?


[참고문헌]

  • Carroll, J. S. (1998). Organizational Learning Activities in High-Hazard Industries: The Logics Underlying Self-Analysis. Journal of Management Studies, 35(6), 699–717.

  • Gherardi, S., & Nicolini, D. (2000). The organizational learning of safety in communities of practice. Journal of management Inquiry9(1), 7-18.

  • Gilardi, L., Marino, M., Fubini, L., Bena, A., Ferro, E., Santoro, S., ... & Pasqualini, O. (2021). The community of practice: A method for cooperative learning of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inspectors. European journal of investigation in health, psychology and education11(4), 1254-1268.

  • Hopkins, A. (2006). Studying Organisational Cultures and Their Effects on Safety. Safety Science, 44(10), 875–889.

  • Somerville, M., & Abrahamsson, L. (2003). Trainers and learners constructing a community of practice: Masculine work cultures and learning safety in the mining industry. Studies in the Education of Adults35(1), 19-34.

  • Wenger, E., McDermott, R., & Snyder, W. M. (2002). Cultivating Communities of Practice: A Guide to Managing Knowledge.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 Weick, K. E., & Sutcliffe, K. M. (2007). Managing the Unexpected: Resilient Performance in an Age of Uncertainty (2nd ed.). Jossey-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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