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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뭘까 시리즈 Ⅶ] 사고 후에야 마침내 들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

  • 작성자 사진: 이세인
    이세인
  • 7월 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16일

✒️ 사고가 나면 늘 "그럴 줄 알았다", "신호가 있었다"는 말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그 신호는 정말 사고 전에도 보였을까요? 이 글은 결과를 알고 나면 과거가 뻔했던 것처럼 보이는 '사후확신 편향'을 통해, 사고 조사가 어떻게 엉뚱한 곳에서 멈추는지를 살펴봅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사고조사나 아차사고 리뷰를 진행하는 안전 담당자

  • 재발 방지 대책이 늘 '재교육'과 '주의 강화'에서 맴돈다고 느끼시는 분

  • 사고 후에 쏟아지는 "봤어야 했다"는 말이 정말 정당한지 한 번쯤 의심해보신 분


1972년, 닉슨의 방문을 둘러싼 실험


1972년, 미국 대통령 닉슨이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냉전 한복판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심리학자 바루크 피쇼프(Baruch Fischhoff)와 루스 베이스(Ruth Beyth)는 이 방문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여러 결과의 확률을 매기게 했습니다. 닉슨이 마오쩌둥을 직접 만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를 맺을 것인가 같은 구체적인 결과들이었습니다.


방문이 끝나고 2주, 3개월, 6개월이 지난 뒤, 연구진은 같은 사람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몇 퍼센트라고 예측했었나요?"


기억은 사실과 달랐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래 더 높은 확률을 매겼다고 기억했습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더 낮게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왜곡은 더 커졌습니다. 결과를 알고 나자, 사람들은 자신이 처음부터 그 결과를 예상했던 것처럼 기억을 고쳐 쓴 것입니다.

자, 우리 기억은 왜 이렇게 바뀔까요?



결과를 알면, 과거가 외길로 보입니다


피쇼프는 다른 실험도 했습니다. 1814년 영국군과 네팔 구르카군 사이에 벌어진,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에 관한 배경 정보를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부에게는 전투의 결과를 알려주고(어떤 이에게는 영국의 승리, 어떤 이에게는 교착 상태처럼 서로 다른 결과를), 일부에게는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각 결과가 일어날 확률을 매기게 했습니다.


결과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가 들은 바로 그 결과를 더 그럴듯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결과를 모르는 사람들보다 훨씬 높게요. 결과를 아는 순간, 그 결과로 이어지는 단서들이 갑자기 도드라져 보이고 다른 가능성은 희미해진 것입니다. 마치 지나온 길을 지도에서 내려다보면 외길처럼 보이지만, 정작 갈림길에 서 있을 때는 여러 갈래가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황량한 들판에서 한 남자가 서 있고, 왼쪽은 곧은 길, 오른쪽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이 보이는 선택의 장면

💡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  어떤 일의 결과를 알고 난 뒤, 그 결과가 처음부터 예측 가능했고 당연했던 것처럼 여기는 경향. '나는 그럴 줄 알았다' 효과라고도 불립니다. 1975년 피쇼프의 연구 이후 50년간 수백 차례 반복 검증되었고, 심리학에서 가장 견고하게 확인된 현상 중 하나입니다.


사고 조사실에서 벌어지는 일


이 편향이 가장 무겁게 작동하는 곳이 사고 조사실입니다.


사고가 나면 조사가 시작되고, 기록을 들춰보면 신호가 줄줄이 나옵니다. 그날따라 점검을 건너뛴 기록, 평소와 다른 설비 소음을 적어둔 메모, 빠듯했던 일정. 조사하는 사람의 눈에는 "이게 다 있었는데 왜 못 막았지?" 싶습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은, 사고가 났기 때문에 비로소 신호로 보이는 것입니다. 사고 직전으로 돌아가 보면, 그 메모와 기록은 그날 쏟아진 수백 건의 평범한 정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점검을 건너뛴 날은 그전에도 많았고 아무 일 없었습니다. 설비 소음은 늘 조금씩 났습니다. 사후에는 또렷한 '신호'지만, 사전에는 잡음 속에 묻힌 하나였습니다. 바로 이 차이가 사후확신 편향입니다.


회의실에서 세 명이 문서와 메모를 검토하며 벽의 자료를 분석한다. 왼쪽은 흩어진 서류, 오른쪽은 원과 화살표로 핵심을 연결한 인포그래픽

피쇼프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결과를 안다는 사실은 우리가 과거를 다 이해했다는 느낌을 주지만, 바로 그 느낌이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앞선 II편에서 우리는 위험이 깔끔한 확률이 아니라 다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라고 했습니다. 사후확신은 그 불확실성을 사후에 지워버립니다. 사고 전에는 흐릿하던 미래가, 사고 후에는 뻔했던 과거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사후확신이 만드는 두 가지 함정


결과를 다 아는 눈으로 과거를 보면, 사고 조사는 두 곳에서 길을 잃습니다.


첫째는 비난입니다. "봤어야 했다"는 판단은 사고를 한 개인의 부주의로 돌립니다. 사후확신은 "그 정도 신호면 당연히 알아챘어야지"라는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당시 그 사람에게는 신호와 잡음을 가려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비난은 쉽고, 그래서 위험합니다.


둘째는 가짜 학습입니다. 비난으로 끝나면 처방도 얄팍해집니다. '주의 강화', '재교육', '경각심 고취'. 정작 물어야 할 질문 — 왜 그 신호가 잡음에 묻혔나, 왜 점검을 건너뛸 수밖에 없었나, 왜 그 소음을 보고할 통로가 없었나 — 은 던져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고가 다시 납니다.


좋은 사고 조사는 결과를 다 아는 '신의 눈'으로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눈높이로 내려가, 그때 그에게 무엇이 보였고 무엇이 보이지 않았는지를 재구성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진짜 원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거창한 제도 변경 대신, 다음 사고나 아차사고를 리뷰할 때 첫 질문 하나만 바꿔보시기를 권합니다.


"왜 못 봤나"가 아니라, "사고 전 그 순간, 이 신호가 그 자리에서 어떻게 보였을까"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시 그 사람이 가졌던 정보, 주어진 시간, 받고 있던 압박을 함께 떠올려보십시오. 그날 그가 처리해야 했던 다른 일들, 그 신호 말고도 울리고 있던 다른 경고들을요. 그러면 "봤어야 했다"는 비난이 "왜 그때는 안 보였나"라는 질문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을 향합니다.


사고 후에 들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은, 사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던 말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사고에서 제대로 배우는 첫걸음입니다. 우리 조직의 사고조사가 비난에서 멈추지 않고 학습으로 이어지게 만들고 싶으시다면, 세이프티온솔루션이 그 과정을 함께 설계해드릴 수 있습니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우리는 사고를 리뷰할 때 "왜 못 봤나"를 먼저 묻나요, "그때 그 자리에서 어떻게 보였나"를 먼저 묻나요?

  • 사고 후에 찾아낸 '명백한 신호들'은, 사고 전에도 정말 명백했나요? 그날 그 신호는 몇 개의 다른 정보와 뒤섞여 있었나요?

  • 우리 조직의 사고 조사가 개인의 '주의 부족'으로 마무리된 적이 있나요? 그때 시스템에 대한 질문은 어디까지 갔나요?

  • 우리의 재발 방지 대책은 '재교육·경각심'에 머무나요, 아니면 신호가 묻혀버린 구조까지 바꾸나요?

  • 같은 종류의 사고가 반복된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지난번 조사는 무엇을 놓쳤던 걸까요?


〔참고문헌〕

  • Fischhoff, B. (1975). Hindsight ≠ foresight: The effect of outcome knowledge on judgment under uncertaint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Perception and Performance, 1(3), 288–299.

  • Fischhoff, B., \& Beyth, R. (1975). "I knew it would happen": Remembered probabilities of once-future thing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Performance, 13(1), 1–16.

  • Fischhoff, B. (1982). For those condemned to study the past: Heuristics and biases in hindsight. In D. Kahneman, P. Slovic, \& A. Tversky (Eds.),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 Roese, N. J., \& Vohs, K. D. (2012). Hindsight bias.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7(5), 41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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