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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뭘까 시리즈 Ⅺ]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위험은 어디에 있을까요?

  • 작성자 사진: 이세인
    이세인
  • 8월 13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일 전

✒️ 위험성평가를 아무리 꼼꼼히 해도,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위험입니다. 이 글은 떠올리지 못한 위험은 평가표에 칸조차 없다는 사실을, 타이타닉의 구명보트 이야기를 통해 살펴봅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우리 평가표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싶으신 분

  • 위험성평가를 꼼꼼히 하는데도 예상 밖의 사고가 걱정되는 분

  •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는 상황은 줄이고 싶으신 분


타이타닉은 규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이 가라앉던 밤.


배에는 약 2,200명이 타고 있었지만, 구명보트에 탈 수 있는 사람은 배에 타고 있던 탑승객의 약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은 구명보트에 탈 자리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기울어진 갑판에 많은 승객이 남아 있고, 바다에는 이미 승객을 태운 소수의 구명보트가 떠 있는 모습. 예상하지 못한 완전 침몰에 비해 구명보트가 부족했던 상황을 표현한 이미지.

어떠신가요? 천 명이 넘는 사람이 탈 구명보트가 없는 상황. 생각만 해도 아찔하기에 이 경우라면 아마도 회사가 안전 규정을 어기고 보트의 수를 줄여 실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사실 타이타닉호의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당시 영국 규정은 그 정도 크기의 배에 구명보트 16척을 요구했고, 타이타닉은 그보다 많은 20척을 실었습니다.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지켰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규정 자체에 있었습니다. 당시 그 규정은 배의 무게만을 기준으로 삼았을 뿐, 몇 명이 타는지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규정이 만들어진 것은 1894년이었죠. 그 사이 배는 몇 배로 커졌는데, 규정은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가 더해집니다. 그 누구도 타이타닉호가 두 시간 만에 완전히 가라앉으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구명보트는 모두가 한꺼번에 바다로 탈출하는 수단이 아니라, 가까이 온 다른 배로 사람들을 조금씩 옮겨 태우는 보조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완전한 침몰'이라는 장면은 애초에 상상밖에 있었기 때문에, 구명보트도 딱 그만큼만 준비된 것입니다.


현장의 위험들도 타이타닉호처럼 예정의 규정을 잘 지키면서도 진짜 안전을 지켜내는 힘은 약한 곳에서 커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위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나아가 제거할 수 있을까요?


평가표는 우리가 상상한 위험만 담습니다


사람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일일수록 더 자주 일어나고 더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반대로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일은 가능성을 낮게 보거나, 아예 생각의 목록에서 빠뜨립니다.


위험성평가표에는 여러 위험이 정리되어 있지만, 평가표 바깥에는 아직 인식되지 않은 위험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모습. 떠올리지 못한 위험은 평가와 관리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표현한 이미지.
💡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 어떤 일이 얼마나 일어날 법한지를 판단할 때, 그 사례가 머릿속에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로 가늠하는 사고의 습관. 1973년 심리학자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정리했습니다. 생생하거나 최근에 겪은 위험은 크게 보이고, 떠올리기 어려운 위험은 작게 보이거나 누락됩니다.

위험성평가도 이 한계 위에서 작동합니다. 위험성평가표의 유해요인들은 결국 우리가 떠올린 만큼만 채워집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위험은 칸을 얻어 평가되고 관리되지만, 상상하지 못한 위험은 칸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남습니다.


타이타닉의 구명보트 수가 '상상된 사고'에 딱 맞춰져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평가표에 칸이 없는 위험


그렇다면 어떤 위험이 우리 상상에서 빠질까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험, 너무 드물어 기억에 없는 위험, 여러 조건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져야만 일어나는 위험, 이러한 위험들은 평소에는 아무 신호도 보이지 않는 위험입니다.


가끔 현장에서는 오해를 하고 계신 지점이 있는데요. 위험성 평가를 더 꼼꼼히, 더 자세히 하면 빠진 위험까지 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꼼꼼함과 상상력은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본다 해도, 애초에 상상의 목록에 없는 위험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돋보기를 아무리 정밀하게 만들어도, 보려고 마음먹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앞선 VII편에서 우리는 사고가 난 뒤에는 모든 신호가 명백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사고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위험이, 사고 후에는 "왜 이걸 몰랐지" 싶을 만큼 또렷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리즈의 첫 편에서 우리는 위험을 광물처럼 다 캐낼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의 한계를 이야기했습니다. 꼼꼼히 들여다보기만 하면 위험이 빠짐없이 발견된다는 가정 말입니다. 상상하지 못한 위험의 존재는, 그 가정이 어디서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위험을 찾기 위해 상상의 폭을 넓히는 법


상상하지 못한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상의 폭을 넓힐 수는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여러 사람의 머리를 모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상상은 자기 경험의 울타리를 넘지 못합니다. 경력이 다르고, 맡은 일이 다르고, 보는 자리가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혼자서는 떠올리지 못했을 위험이 드러납니다. 신입이 "이거 원래 이렇게 위험한 거예요?"라고 묻는 순간,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위험이 다시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신입, 현장 작업자, 관리자, 외부 전문가 등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위험성평가표를 둘러보고 각자의 관점에서 발견한 위험을 추가하는 모습. 다양한 경험과 시선이 모일수록 기존 평가표에 없던 위험을 발견할 수 있음을 표현한 이미지.

다른 현장과 다른 업계의 사고를 들여다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다른 곳에서는 이미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그 사고를 가져와 이게 우리 현장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지를 물어보면, 우리 평가표에 없던 칸 하나가 새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시도를 한다고 해서 모든 위험을 다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상상이 아닙니다. 상상의 폭을 한 뼘이라도 넓히고, 동시에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한 위험이 늘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 잡았다고 믿는 평가표보다, 못 잡은 것이 있음을 아는 평가표가 더 안전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위험성 평가를 할 예정이시라면 질문 하나만 더 던져 보시기를 권합니다.


"우리가 아직 떠올리지 못한 위험은 없을까?"


아마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실 겁니다. 상상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떠올리느냐는 반발까지 생길 지경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도구가 필요합니다. 다른 업계에서 최근 일어난 사고 하나를 회의 자리에 가져와, "이게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어디서 시작될까"를 함께 상상해 보십시오.


또 다른 방법은 신입이나 다른 부서 사람에게 우리 현장을 보여 주고, 무엇이 위태로워 보이는지 물어 보는 것입니다. 익숙한 우리 눈이 놓친 자리를, 낯선 눈이 짚어줄 때가 있습니다.


위험성평가표는 우리가 상상한 위험의 목록입니다. 그러니 평가표를 채우는 일만큼이나, 그 목록 밖에 무엇이 있을지 함께 상상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 조직의 상상의 폭을 넓히는 자리가 필요하시다면, 세이프티온솔루션이 그 과정을 함께 설계해 드릴 수 있습니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우리 위험성평가표는 '자주 일어나는 위험'에 치우쳐 있나요, 아니면 드물지만 치명적인 위험까지 담고 있나요?

  • 최근 우리 업계나 다른 업계에서 일어난 사고 중, 우리 평가표에는 칸조차 없는 유형이 있나요?

  • 우리는 위험을 떠올릴 때 늘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나요? 다른 경험과 시선을 가진 사람을 그 자리에 부른 적이 있나요?

  • 신입이나 외부인이 우리 현장을 보고 "이게 위험하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나요? 그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 우리 조직은 "다 점검했다"는 평가표를 더 신뢰하나요, 아니면 "아직 못 본 것이 있다"는 전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나요?


〔참고문헌〕

  • Tversky, A., \& Kahneman, D. (1973). Availability: A heuristic for judging frequency and probability. Cognitive Psychology, 5(2), 207–232.

  • British Wreck Commissioner's Inquiry. (1912). Report on the loss of the S.S. Titanic.

  • Merchant Shipping Act 1894 (UK), Life-Saving Appliances Rules.

  • Clarke, L. (2006). Worst Cases: Terror and Catastrophe in the Popular Imagina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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