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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뭘까 시리즈 Ⅴ] 위험을 0으로 만들면, 정말 안전해질까요?

  • 작성자 사진: 이세인
    이세인
  • 2일 전
  • 5분 분량

모든 안전 활동은 위험을 0으로 만드는 것을 향하고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1949년 영국의 한 법정이 그 믿음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 글은 '위험 0'이라는 목표가 왜 도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지, 그리고 남은 위험을 정직하게 다루는 것이 어떻게 진짜 안전이 되는지를 살펴봅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무재해 며칠'을 목표로 달리면서도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셨던 분

  • 위험을 다 없앨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기 어려우셨던 분

  •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먼저 써야 할지 늘 고민이신 안전 담당자



1949년 영국, 어느 광산에서 일어난 사고의 판결로 본 위험의 책임


1949년, 영국 웨일스의 마린 탄광(Marine Colliery). 갱내에서 지지목을 다루던 광부 조지프 에드워즈(Joseph Edwards)가 갱도를 걷다가 무너진 측벽에 깔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벽은 매우 단단한 내화점토였지만, 안에 화석이 된 나무가 박혀 있어 주변 암석과 제대로 맞물리지 못하는 결함이 숨어 있었고, 하필 그 지점이 무너진 것입니다.


유족은 당시 갓 국유화되어 탄광을 운영하던 국영석탄공사(National Coal Board)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근거는 석탄광산법(1911년)이었습니다.


이 법은 광산주에게 모든 갱도의 천장과 측벽을 안전하게 유지할 의무를 지우면서, 한 가지 예외를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을 광산주가 입증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사 측은 바로 그 예외에 기댔습니다. 전국 수많은 갱도의 모든 벽을 빠짐없이 보강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고, 이는 위험에 비해 과도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애스퀴스 판사는 여기서 안전의 역사에 남을 기준 하나를 세웁니다.


그는 양팔 저울 하나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쪽에는 위험의 크기를, 다른 쪽에는 그 위험을 막는 데 드는 희생 — 돈과 시간과 수고 — 을 올립니다. 그리고 둘을 견줍니다.


위험에 비해 희생이 터무니없이 크다면, 거기까지는 의무가 아닙니다.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reasonably practicable)'이란 '물리적으로 가능한'보다 좁은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판결의 결말이 흥미롭습니다. 법원은 공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따져야 할 것은 '전국 모든 갱도'가 아니라 '무너질 위험이 있던 바로 그 구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문제의 갱도는 이미 절반가량이 지지목으로 받쳐져 있었고, 나머지를 보강하는 비용은 사람의 목숨이라는 위험에 비하면 결코 크지 않았습니다. 저울은 한쪽으로 분명히 기울어 있었습니다. 공사는 패소했습니다.


이 판결은 두 가지를 동시에 못 박았습니다.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은 반드시 해야 하고, 동시에 그 너머로 위험을 끝없이 좇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전이 닿아야 할 목표는 '위험 0'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선'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선은 대체 어디일까요?



위험 0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선을 찾기 전에,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위험을 0으로 만드는 일은, 사실 늘 가능합니다. 작업을 아예 하지 않으면 됩니다.


고소작업의 추락 위험을 0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답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을 해야 하고, 모든 작업에는 끝까지 없앨 수 없는 위험이 남습니다.


그 남은 위험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잔여위험입니다. 위험 요인을 찾고, 통제 조치를 적용하고, 그럼에도 남는 위험입니다.


안전관리의 목표는 이 잔여 위험을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0은 작업을 멈춰야만 닿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목표는 합리적으로 닿을 수 있는 선까지 위험을 낮추고, 그러고도 남은 위험을 분명히 알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 ALARP(As Low As Reasonably Practicable)  위험을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한 낮게' 낮춘 상태. 위험을 더 줄이는 데 드는 비용·시간·수고가 그로 인해 줄어드는 위험에 비해 터무니없이 클 때, 그 지점이 ALARP입니다. 영국의 1949년 판례에서 출발해 오늘날 여러 나라의 안전관리 원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참고로 방사선 분야에서는 비슷한 개념을 ALARA,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낮게'라고 부릅니다.

위험을 0으로 만드는 것과, 위험을 합리적인 선까지 낮추고 남은 것을 관리하는 것.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길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도 전혀 다릅니다.

0을 목표로 내걸 때 벌어지는 일


위험 0은 구호로는 더없이 깔끔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제 목표로 세우는 순간, 세 가지가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첫째, 자원이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위험을 0에 가깝게 만들려면, 이미 충분히 낮아진 위험을 한 번 더 깎는 데까지 자원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위험이 낮을수록 그것을 더 줄이는 비용은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그렇게 작은 위험을 0에 가깝게 다듬는 사이, 정작 한 번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큰 위험에 쓸 자원은 남지 않습니다. II편에서 우리는 가장 큰 사고가 평가표의 초록색 칸에서 걸어 나온다고 했습니다.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작게 셈해지는 중대재해 말입니다. 0을 좇는 동안, 정작 그 칸을 들여다볼 여력이 사라집니다.


둘째, 정직성이 무너집니다.

0이 목표가 되면, 0이 아닌 현실은 자연스럽게 숨겨집니다.

아차 사고를 보고하면 기록이 깨지고, 작은 부적합을 올리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입을 닫습니다. '무재해 며칠'이라는 숫자는 올라가지만, 그것은 위험이 사라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위험이 보고되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셋째, 학습이 멈춥니다.

위험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취급하면, 남은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잘못을 인정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면 "이 작업에는 이런 위험이 아직 남아 있고, 우리는 이렇게 대비한다"는 대화가 사라집니다. 위험을 함께 들여다보고 배우는 공간이 닫히는 것입니다.


위 세 가지는 따로 놀지 않습니다. 자원이 잘못 배분되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종내에는 학습이 멈추게 되면, 현장에는 '서류상의 0'과 '실제로 남은 위험'의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위험 0이라는 목표가, 역설적으로 위험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전하면 충분한가"를 함께 정하기


그렇다면 0이 아니라면, 어디가 우리의 목표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영국 안전 당국은 위험을 세 구역으로 나눈 그림을 오래 사용해 왔습니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당근을 세워놓은 듯한 모양입니다.



얼마나 안전하면 충분한가를 정하기, As Low As Reasonably Practicable
< 얼마나 안전하면 충분한가를 정하기, As Low As Reasonably Practicable >


맨 위는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입니다. 비용이 얼마가 들든 이 구역의 위험은 줄이거나, 그렇지 못하면 작업을 멈춰야 합니다.


맨 아래는 충분히 낮은 위험입니다. 여기까지 내려온 위험은 더 깎는다고 의미 있는 차이가 생기지 않으므로, 자원을 더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가운데, 가장 넓은 구역이 바로 ALARP 구역입니다. 대부분의 현장 작업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구역에서는 합리적으로 가능한 만큼 위험을 낮추고, 남은 위험은 알고 관리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떤 작업이 어느 구역에 속하는지가 저절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작업이라도 어디까지를 받아들일 만한 위험으로 볼지는 조직마다 다르고, 그 선은 누군가 그어야 합니다.


IV편에서 우리는 사람마다 마음속에 '받아들일 만한 위험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가진 기준이었다면, 지금 말하는 것은 조직이 의식적으로 합의해 긋는 선입니다. "우리는 이 작업의 위험을 여기까지 낮추고, 남은 만큼은 이렇게 관리하며 받아들인다"를 함께 정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선은 한 번 긋고 끝이 아닙니다. 더 안전한 장비가 싸게 나오거나 더 나은 방법이 생기면, 받아들이던 위험도 다시 낮춰야 합니다. 위험이 이미 낮더라도, 적은 비용으로 더 줄일 수 있다면 줄이는 것이 ALARP의 지향점입니다. 멈춰 있는 선이 아니라, 계속 내려가는 선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이번에도 거창한 제도 변경 대신, 다음 위험성평가에서 칸 하나를 더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위험요인을 적고 통제조치를 적은 뒤,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는 위험은 무엇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남은 위험을 빈칸으로 두지 말고 분명한 문장으로 적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지 팀이 함께 확인해 보십시오.


"이 작업에는 이런 위험이 남아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으며, 이렇게 관리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적힌 평가표와, 그냥 '위험 없음'으로 비워둔 평가표는 전혀 다른 문서입니다. 앞의 것은 남은 위험을 보이는 곳에 두고, 뒤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습니다.


위험 0은 좋은 구호이지만 나쁜 목표입니다. 진짜 안전은 위험이 없는 척하는 데서 오지 않고, 남은 위험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함께 관리하기로 합의하는 데서 옵니다.


우리 조직이 받아들이는 위험의 선을 어디에 그을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문서로 남기고 공유할지 함께 정리하고 싶으시다면, 세이프티온솔루션의 진단과 컨설팅이 그 출발점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우리 조직의 안전 목표는 '위험 0'에 가깝나요, 아니면 '남은 위험을 알고 관리하는 것'에 가깝나요? 그 목표는 현장에서 어떤 행동을 만들고 있나요?

  • 우리 위험성평가표에는 통제조치 이후 '남은 위험'을 적는 자리가 있나요? 그 자리는 채워져 있나요, 비어 있나요?

  • 이미 충분히 낮은 위험을 다듬는 데 쓰는 시간과, 한 번이면 치명적인 위험을 들여다보는 시간 중 어느 쪽이 더 많나요?

  • 우리 현장에서 '무재해 기록'은 위험이 줄었다는 신호인가요, 아니면 보고가 줄었다는 신호일 수도 있나요?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나요?

  • 어떤 작업의 위험을 '여기까지는 받아들인다'고 팀이 함께 정해본 적이 있나요? 그 선은 누가, 어떤 근거로 그었나요?


〔참고문헌〕

  • Edwards v. National Coal Board [1949] 1 All ER 743 (CA).

  • Coal Mines Act 1911 (1 & 2 Geo. 5. c. 50), ss. 49, 102(8). United Kingdom.

  • Fischhoff, B., Slovic, P., Lichtenstein, S., Read, S., & Combs, B. (1978). How safe is safe enough? A psychometric study of attitudes towards technological risks and benefits. Policy Sciences, 9(2), 127–152.

  • Health and Safety Executive. (2001). Reducing risks, protecting people: HSE's decision-making process. HSE Books.

  • ISO 31000:2018. Risk management — Guidelines.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 ISO 45001:2018.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management systems — Requirements with guidance for use.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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