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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하는 안전문화 (1) : 근로자가 아니라 '조직'이 학습을 한다고요?

  • 작성자 사진: sam400049
    sam400049
  • 4월 22일
  • 5분 분량

✒️ 이 글은 '조직 학습(Organizational Learning)' 개념을 통해, 안전문화가 왜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학습을 통해 발전해야 하는지, 함께 알아봅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반복되는 같은 유형의 사고에 답답함을 느껴 보신 분

  • 사고 조사가 끝나면 보고서는 캐비닛에 들어가고 현장은 그대로인 모습이 익숙한 분

  • 안전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그동안의 노력이 리셋되는 느낌을 받아 보신 분



조직이 학습을 한다고요?


"조직이 학습을 한다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학습은 대부분의 경우에 개인의 일로 여겨집니다. 개인이 책을 읽고, 개인이 교육을 받고, 개인이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조직도 학습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개인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조직 자체가 배움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처음 들으면 좀 이상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조직 안에 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학습을 한다는 걸까요? 이번 글에서는 학습하는 조직의 의미와 안전문화에 있어서 중요성을 함께 살펴봅니다.


개인은 배웠는데, 조직은 배우지 못했을 때


조직의 학습을 설명하기 전에 두 가지 장면을 먼저 보겠습니다.


1. 사라진 베테랑의 손끝 감각

20년 차 정비 반장이 퇴직했습니다. 그는 설비 소리만 듣고도 베어링 이상을 잡아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소리가 평소랑 살짝 달라요. 한번 멈춰서 보죠." 그의 한마디 덕분에 큰 사고를 막은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가 떠난 뒤 6개월, 비슷한 설비에서 비슷한 고장이 반복됩니다. 후임자들도 같은 교육을 받았는데 말입니다.


2. 50km 떨어진 곳에서 반복된 사고

A 현장에서 작년에 추락 사고가 있었습니다. 원인 분석도 하고 시정 조치도 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 뒤, 50km 떨어진 B 현장에서 거의 똑같은 유형의 사고가 발생합니다. B 현장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A 현장에서 사고가 났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 두 장면은 모두 개인은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는데, 조직은 배우지 못했을 때를 보여줍니다. 베테랑은 20년에 걸쳐 학습했지만 그 학습은 그의 머릿속에만 있었고, A 현장은 사고로부터 배웠지만 그 배움은 A 현장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습니다.


조직 학습이라는 개념의 등장


1970~80년대 Chris Argyris와 Donald Schön, 그리고 이후 Peter Senge 같은 학자들은 어떤 회사는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고, 어떤 회사는 한 번 겪은 일에서 배워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차이는 그 회사에 똑똑한 사람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은 그 차이를 만드는 무언가를 '조직 학습(Organizational Learning)'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직 학습이란, 한 사람이 알게 된 것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고, 그것이 일하는 방식과 절차에 스며들어, 결국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 안에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개인의 머릿속에 있던 지식이 조직의 몸에 새겨지는 과정입니다.


💡 조직 학습(Organizational Learning) : 조직이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고, 그 지식을 조직의 일하는 방식 안에 새겨 행동의 변화로 이어가는 과정 - Argyris & Schön

안전문화의 차이를 만드는 학습의 깊이


조직 학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개념이 있습니다. Argyris가 제시한 Single-loop learning(단일순환학습)과 Double-loop learning(이중순환학습)입니다.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알람을 맞추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지각을 합니다. 그래서 알람을 10분 더 일찍 맞춥니다. 그래도 또 지각을 하니, 다시 10분 더 일찍 맞춥니다. 이게 Single-loop learning입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숫자만 바꾸는 것입니다.


Double-loop learning은 다릅니다. "잠깐, 알람을 일찍 맞춰도 계속 지각하는 이유가 뭐지? 혹시 잠드는 시간이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아니면 출근 동선 자체가 비효율적인 건 아닐까?" 이렇게 상황의 전제 자체를 다시 묻는 것입니다.


조직도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정해진 틀 안에서 숫자만 조정할 수 있고, 그 틀 자체를 다시 물을 수도 있습니다. 안전모 미착용에 대입해 본다면, 근로자에게 주의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전모를 쓰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의 어떤 환경과 분위기가 불안전한 행동을 만들고 있나?”까지 살펴봅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Single-loop learning에서 멈춥니다. 그래서 표면의 행동은 잠깐 바뀌지만, 같은 종류의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계속 돌아옵니다. Double-loop learning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조직이 진짜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안전문화에 왜 조직 학습이 필요할까요?


이유 1. 전문가가 조직을 떠나면 노하우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작업할 때는 이쯤에서 한 번 멈춰서 확인해야 해", "이 소리가 나면 평소와 다른 거야", "비 오는 날엔 이 동선이 미끄러워서 위험해." 이런 지식은 매뉴얼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말로 다 표현되지 않고 경험한 사람의 몸에 새겨진 지식입니다. 이런 암묵적인 지식이 조직 안에서 전달되지 않으면, 그 지식을 가진 사람이 떠날 때 함께 떠납니다. 안전은 매뉴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학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유 2. 안전문화는 개개인이 가진 의식의 합이 아니라 함께 만든 일하는 방식입니다

안전문화는 구성원 개개인의 안전 의식을 합한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함께 만들어 놓은 일하는 방식의 패턴입니다. 개인이 아무리 잘 학습해도, 그 학습이 조직의 패턴으로 자리 잡지 않으면 한 사람의 의식은 쉽게 희미해집니다. 반대로 조직 차원의 학습이 쌓여 "우리는 이렇게 한다"는 공동의 방식이 되면, 구성원 누구든 그 패턴 안에서 자연스럽게 안전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이유 3. 같은 사고를 두 번 겪지 않으려면, 한 곳의 배움이 다른 곳으로 전달 되어야 합니다

A 현장에서 비싸게 배운 교훈이 B 현장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위험으로 다시 나타난다면, 우리는 같은 학습을 비싸게 두 번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사고는 그 자체로 너무 큰 비용입니다. 그 비용을 한 번 치렀다면, 적어도 같은 비용을 두 번 치르지는 않아야 합니다. 조직 학습은 이 비용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조직 학습의 한 가지 전제, 공정한 안전문화(Just Culture)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떠오르실 수 있습니다.

"조직이 학습하려면 사람들이 자기가 겪은 일을 솔직하게 말해야 할 텐데, 우리 현장은 그게 잘 안 되는데요?"


조직 학습은 정보가 전달될 때만 작동합니다. 그리고 정보가 전달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가 본 것, 겪은 것, 실수한 것을 안심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수와 위반을 무조건 처벌하는 문화도, 모든 잘못을 덮어주는 문화도 학습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서 균형 잡힌 문화가 바로 공정한 안전문화(Just Culture)입니다. Just Culture는 의도적인 위반이나 무모한 행동에는 분명한 책임을 묻되, 일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나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일은 처벌이 아니라 학습의 자원으로 다룹니다.


조직 학습과 Just Culture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공정한 문화가 없으면 정보가 흐르지 않고, 정보가 흐르지 않으면 조직은 학습할 수 없습니다.



조직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배웁니다


조직 학습은 거창한 교육 프로그램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휴게실에서 오가는 5분의 대화, 인수인계의 한마디, 베테랑과 신입 사이의 짧은 조언 — 이런 일상적인 순간들이 사실 조직이 배우는 가장 강력한 통로입니다.


반대로 조직이 학습을 잃는 것도 이 통로가 막힐 때입니다. 바빠서 인수인계가 생략되고, 베테랑과 신입이 함께 일할 기회가 줄고, 실수를 꺼내놓을 자리가 없어질 때 — 조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중요한 것들을 잊어갑니다.


학자들은 이런 비공식적 학습의 흐름을 실천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 CoP)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 조직 안에 이미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이 학습의 흐름들을 어떻게 알아보고 살릴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조직 학습은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지식이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남도록, 경험이 묻히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 그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조직의 경험, 어떻게 자산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첫째, 경험이 사람에게 묶이지 않도록 꺼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고 후 보고서를 쓰는 것과,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이 직접 이야기하는 자리는 다릅니다. 말로 꺼내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이 있고, 그것이 다음 사람에게 전달될 때 조직의 자산이 됩니다.


둘째, 그 자리가 안전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누가 잘못했나"를 가리는 분위기에서는 아무도 경험을 꺼내지 않습니다.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려면 말한 사람이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먼저입니다. 이 때 외부의 퍼실리테이터가 진행하는 워크샵을 활용해 심리적인 안전감을 확보하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우리 조직에서 베테랑의 안전 노하우는 어떻게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나요?

  • 작년에 발생한 사고로부터 우리 조직이 '배운 것'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나요?

  • 한 현장의 교훈이 다른 현장으로 전달되는 길이 우리 조직에는 있나요?

  • 사고 분석 자리에서 "누가 잘못했나"와 "우리의 어떤 전제가 문제였나" 중 어떤 질문이 더 자주 나오나요?

  • 같은 종류의 사고가 모습만 바꿔서 반복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 우리 조직에서 실수를 말한 사람은 어떤 반응을 받게 되나요?

  • 신입이 들어왔을 때, 우리 조직이 과거에 겪은 사고와 위험 경험을 어디에서 알 수 있나요?

  • 우리 조직에서 안전은 특정 개인의 역량에 더 많이 기대고 있나요,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스며들어 있나요?

[참고문헌]

  • 오영민, 김윤호, & 김한솔. (2013). 원전 안전문화에 대한 학습조직이론 적용방안 연구. 대한인간공학회 학술대회논문집, 426-430.

  • 송은영, & 장용석. (2007). 실패를 통한 학습: 항공 사고를 통해 본 조직 학습의 다양성: 항공 사고를 통해 본 조직 학습의 다양성. 한국사회학41(5), 163-196.

  • Nævestad, T. O. (2008). Safety cultural preconditions for organizational learning in High‐Risk organizations. Journal of Contingencies and Crisis Management16(3), 154-163.

  • Gherardi, S., & Nicolini, D. (2000). The organizational learning of safety in communities of practice. Journal of management Inquiry9(1), 7-18.

  • Littlejohn, A., Lukic, D., & Margaryan, A. (2014). Comparing safety culture and learning culture. Risk Management16(4), 272-293.

  • Duryan, M., Smyth, H., Roberts, A., Rowlinson, S., & Sherratt, F. (2020). Knowledge transfer for 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Cultivating health and safety learning culture in construction firms. Accident Analysis & Prevention139, 105496.

  • Gerbec, M. (2013). Supporting organizational learning by comparing activities and outcomes of the safety-management system. Journal of Loss Prevention in the Process Industries26(6), 111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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