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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행동이란 무엇일까 시리즈 Ⅳ] 눈앞의 위험, 왜 보고도 보지 못할까

작성자 사진: 이세인
이세인
10월 8일
4분 분량

✒️ 사고 조사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 가운데 하나가 "분명히 보였을 텐데?"입니다. 시야에 있었고, 가려지지도 않았는데, 사람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죠. 이 글은 눈이 향하는 곳과 실제로 알아차리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주의’에 관한 연구를 가지고 살펴봅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사고 조사 보고서에 "미확인", "못 봤다"는 진술이 반복되어 답답한 안전관리자

  • 순회 점검 때마다 지나쳤던 위험이 나중에야 발견되어 곤혹스러운 관리감독자

  • 표지판과 CCTV를 늘려도 "못 봤다"는 말이 줄지 않는 이유가 궁금한 경영진



하버드의 어느 실험실


1999년,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가 참가자들에게 짧은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뒤섞여 농구공을 주고받는 영상입니다. 과제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바로 흰 셔츠를 입고 있는 팀의 패스 횟수만 세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모니터 속 농구 영상을 보며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세는 동안 화면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고릴라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습. 머릿속에는 농구공만 떠 있어 특정 과제에 집중할 때 예상하지 못한 자극을 놓치는 무주의맹(Inattentional Blindness)과 선택적 주의를 표현한 이미지.

영상이 끝나고 연구진이 물었습니다. "고릴라를 보셨습니까?" 참가자의 절반가량이 되물었습니다. "무슨 고릴라요?" 사실 이 영상 중간,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화면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선수들 사이에 멈춰 서서 가슴을 두드리고는 유유히 걸어 나갑니다.


패스 횟수는 정확히 세어 놓고도, 화면 한복판을 지나간 고릴라는 보지 못한 것입니다. 어떠세요? 여러분이라면 이 고릴라를 보셨을까요?



우리의 주의는 스포트라이트처럼 좁습니다


이 실험은「우리 가운데의 고릴라」라는 제목으로 학술지 『Perception』에 실렸고, 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해당 실험이 보여준 현상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아리엔 맥과 어빈 록이 1998년 책 『무주의맹(Inattentional Blindness)』에서 정리한 개념입니다. 주의가 다른 과제에 묶여 있을 때, 사람은 눈앞에 나타난 뜻밖의 대상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의 핵심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릴라를 놓친 참가자들의 시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주의라는 스포트라이트가 패스 횟수만 비추고 있었고, 조명 밖에 선 고릴라는 눈에 비쳤지만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구성원들이 본다고 해서 알아차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무주의맹(Inattentional Blindness) : 주의가 특정 과제에 집중되어 있을 때, 시야 안에 나타난 뜻밖의 자극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 맥과 록이 1998년 책에서 개념화했고, 사이먼스와 차브리스의 1999년 고릴라 실험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뜻밖의 대상일수록, 그리고 수행 중인 과제가 어려울수록 놓칠 확률이 커집니다.


전문가도, 똑바로 봐도 놓칩니다


그렇다면 훈련된 눈이라면 다를까요?


2013년, 하버드 의대에서 이뤄진 실험입니다. 트래프턴 드루(Trafton Drew) 연구진은 방사선과 전문의 24명에게 평소 판독하던 흉부 CT 영상에서 폐 결절을 찾는 과제를 맡겼습니다. 다만 마지막 영상에는 평균 결절의 48배 크기인 고릴라 그림을 심어 두었습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폐 결절을 찾기 위해 여러 장의 흉부 CT 영상을 판독하는 장면. 시선 추적 경로가 화면 속 고릴라 위치를 지나가지만 전문의의 주의는 폐 결절 탐색에 집중되어 있어 고릴라를 놓치는 모습을 통해, 전문가도 무주의맹과 주의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표현한 이미지.

놀랍게도 전문의의 83%가 고릴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시선추적 결과였습니다. 고릴라를 놓친 사람들 대부분의 시선이 고릴라가 있는 자리를 정확히 지나갔습니다. 눈은 보았지만, 결절을 찾도록 요청받은 전문의들은 결절 아닌 것을 그냥 지나친 것입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전문성조차, 인간의 주의와 지각이 지닌 본질적 한계에 면역을 주지는 못한다." (Drew, Võ & Wolfe, 2013,『Psychological Science』)


현장의 언어로 옮겨 볼까요?


"봤다"와 "알아차렸다"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시선이 지나갔다는 사실은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사고 조사에서 "시야에 있었는데 왜 못 봤느냐"는 추궁이 의미없이 헛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알아차림에도 수준이 있다


그렇다면 위험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상황인식 이론에 따르면 위험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세 개의 수준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 1수준 = 지각입니다. 주변의 중요한 요소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 2수준 = 이해입니다. 감지한 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종합하는 것입니다.

  • 3수준 = 예측입니다. 이 상황이 잠시 뒤 어떻게 될지 내다보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이 불가능한 지점입니다.


1996년 항공 안전보고 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상황인식 오류의 76.3%가 1수준, 곧 필요한 정보를 지각하는 단계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이해가 모자라서도, 예측이 틀려서도 아니고, 애초에 보지 못해서 무너진 경우가 넷 중 셋이었다는 뜻입니다.


위험을 인식하는 1단계의 지각이 빠지면 그 다음 단계의 이해와 예측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 상황인식(Situation Awareness) : 엔즐리가 1995년 『Human Factors』에 정리한 개념으로, 주변 요소의 지각(1수준), 그 의미의 이해(2수준), 가까운 미래의 예측(3수준)이라는 세 층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래층이 무너지면 위층은 설 수 없는 구조입니다.


못 본 사람을 탓하면, 다음 사고도 못 봅니다


이 연구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주의는 총량이 정해진 자원이고, 부여받은 과제가 개개인의 주의를 빨아들일수록 시야 주변은 어두워집니다. 크레인 신호에 온 주의를 쏟는 작업자는 뒤에서 다가오는 지게차를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볼트 체결에 집중하고 있는 눈은 바로 옆에 놓인 자칫 걸려 넘어질 수도 있는 자재더미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수록, 바로 그 몰입 때문에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잘 좀 봐라"는 주문은 현장의 안전을 만드는 대책이 되지 못합니다.


주의를 두 배로 늘려 줄 방법은 사람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적합한 대책은 주의를 나누어 갖는 설계입니다. 집중이 필요한 작업일수록 일하는 눈과 지키는 눈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법이 위험 작업 곳곳에 감시인과 신호수를 두도록 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산업현장에서 한 작업자는 배관 체결 작업에 집중하고 다른 작업자는 주변의 지게차 이동과 작업 동선을 감시하는 모습. 집중 작업 중 발생하는 무주의맹과 주변 위험 인지 실패를 줄이기 위해 작업자의 주의를 역할별로 나누고, 일하는 눈과 주변을 지키는 눈을 분리하는 산업안전 방식을 표현한 이미지.

여기에 하나 더 보탤 수 있습니다. 무주의맹은 뜻밖의 대상에서 가장 강하게 일어납니다.


뒤집어 말하면, 미리 예고된 위험은 훨씬 잘 보입니다. 작업 전에 "오늘 이 작업에 나타날 수 있는 뜻밖의 위험"을 입 밖에 내어 두는 일은, 그 위험을 뜻밖이 아닌 것으로 바꾸어 놓는 일입니다.


위험을 못 본 원인은 사람의 태만이 아니라 주의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구조에 있습니다. 주의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대신, 보는 눈을 나누고 뜻밖의 것을 미리 예고하는 설계가 우리 현장의 사람을 지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첫걸음은 작업 전에 역할을 소리 내어 나누는 것입니다.


"나는 일을 본다, 당신은 주변을 본다." 2인 1조라면 한 사람의 주의는 과제에, 다른 사람의 주의는 주변에 두도록 시작 전에 정해 두십시오.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보는 조와, 두 곳을 나누어 보는 조는 같은 인원으로 전혀 다른 시야를 갖게 됩니다.


위험을 예고하고 시야를 나누는 대화가 현장에 자리 잡게 하고 싶으시다면, 세이프티온솔루션의 안전 소통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그 대화법을 함께 훈련해 보십시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최근 사고나 아차사고 조사에서 "분명히 보였을 텐데"라는 말이 나온 적 있나요? 그때 우리는 사람의 태만을 찾았나요, 주의의 구조를 찾았나요?

  • 우리 현장에서 주의를 가장 강하게 빨아들이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그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을 보는 눈은 누구인가요?

  • 순회 점검을 나갈 때 우리는 무엇을 찾으러 가나요? 찾으러 간 것이 아닌 위험이 눈에 들어온 것은 언제였나요?

  • 오늘 작업에 나타날 수 있는 '뜻밖의 손님'을 묻는다면, 구성원들은 무엇을 꼽을까요?

  • 표지판과 카메라를 늘리는 일과 보는 눈을 설계하는 일, 우리는 어느 쪽에 더 투자해 왔나요?


〔참고문헌〕

  • Drew, T., Võ, M. L.-H., & Wolfe, J. M. (2013). The invisible gorilla strikes again: Sustained inattentional blindness in expert observers. Psychological Science, 24(9), 1848–1853.

  • Endsley, M. R. (1995). Toward a theory of situation awareness in dynamic systems. Human Factors, 37(1), 32–64.

  • Jones, D. G., & Endsley, M. R. (1996). Sources of situation awareness errors in aviation. Aviation, Space, and Environmental Medicine, 67(6), 507–512.

  • Mack, A., & Rock, I. (1998). Inattentional blindness. MIT Press.

  • Simons, D. J., & Chabris, C. F. (1999). Gorillas in our midst: Sustained inattentional blindness for dynamic events. Perception, 28(9), 1059–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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