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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행동이란 무엇일까 시리즈 Ⅲ] 베테랑의 실수, 왜 숙련이 사고를 부를까

작성자 사진: 이세인
이세인
10월 2일
4분 분량

✒️ 20년 경력자가 눈 감고도 하던 작업에서 어느날 사고가 납니다. 실력이 모자라서?, 마음이 풀어져서? 아닙니다. 숙련 그 자체에 실수를 만드는 구조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몸에 익은 행동이 어떻게 의도를 벗어나는지, 행위 실수의 과학을 살펴봅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베테랑의 어이없는 사고 앞에서 원인을 설명할 말이 궁했던 안전관리자

  • 숙련자에게 기본 수칙을 다시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관리감독자

  •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말을 최근에 해본 적 있는 경영진



1890년, 만찬 대신 잠자리에 든 신사


1890년,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심리학의 원리』에 한 일화를 적었습니다. 어느 신사가 저녁 만찬에 참석하려고 옷을 갈아입으러 침실에 올라갔습니다. 겉옷을 벗고, 단추를 풀고, 하나씩 벗어 나가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옷을 벗는 첫 동작들이 평소 밤마다 이어지던 순서, 곧 잠자리에 드는 순서를 그대로 불러온 것입니다.

1890년대 침실에서 정장을 입고 만찬에 가려던 신사가 옷을 갈아입는 동작을 이어가다 자신도 모르게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을 시간의 흐름처럼 보여주는 이미지. 윌리엄 제임스가 소개한 일화를 바탕으로, 몸에 익은 습관적 행동이 본래 의도를 가로채는 자동화된 행동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제임스는 이것을 단순히 웃긴 이야기로 적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몸이 얼마나 많은 일을 의식 없이 해내는지 보여주는 증거로 풀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오래된 일화 속에, 오늘날 현장에서 일어나는 베테랑의 사고를 이해하는 열쇠가 들어 있습니다.



실수의 두 종류


1981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의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 중 실수 사례를 모아 분류한 연구를 『Psychological Review』에 발표했습니다.


노먼은 실수를 크게 둘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계획 자체가 틀린 경우입니다. 몰라서, 잘못 판단해서 생기는 오류입니다. 둘째는 계획은 옳았는데 실행이 어긋난 경우입니다. 노먼은 이것을 행위 실수라고 불렀습니다. 마트에 들르려고 차를 몰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늘 다니던 길을 따라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 있는 일, 우유를 부으려다 옆에 있던 오렌지주스를 시리얼에 붓는 일이 그렇습니다.


노먼이 주목한 대표 유형이 포획 오류입니다. 지금 하려는 행동의 앞부분이 더 자주 해온 다른 행동과 닮아 있으면, 손에 더 익은 쪽이 행동의 나머지를 가로채 갑니다. 만찬 신사의 옷 벗기가 잠자리 순서에 붙들려 간 것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나옵니다. 포획 오류는 익은 행동이 있어야 일어납니다. 그 일을 오래,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가로챌 행동의 시작점이 많다는 뜻입니다.

산업 플랜트에서 숙련된 작업자가 새로운 조작 대상이 아닌, 몸에 익은 기존 조작 위치로 손을 먼저 뻗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 의도한 작업과 실제 실행이 어긋나는 행위 실수(Action Slip)와 포획 오류(Capture Error), 그리고 숙련자의 자동화된 행동이 조건 변화 앞에서 사고 위험이 될 수 있음을 표현한다.

💡 행위 실수(Action Slip)와 포획 오류(Capture Error) : 노먼의 1981년 정의에 따르면 행위 실수는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수행될 때 생기는 오류, 곧 계획이 아니라 실행이 어긋난 실수입니다. 그 대표 유형인 포획 오류는 지금 수행 중인 동작 순서가 더 자주 수행해 온 다른 순서와 비슷할 때, 익숙한 쪽 순서가 행동을 가로채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숙련은 주의를 끄고 달리는 인류가 오래 연마해 온 기술입니다


왜 손에 익은 행동이 의도를 가로챌 수 있을까요?


덴마크 리쇠연구소의 공학자 옌스 라스무센(Jens Rasmussen)이 1983년에 정리한 틀이 그 답을 줍니다. 1983년 이후 수천 편의 연구에 인용된 이 틀은 사람의 수행을 세 층으로 나눕니다. 낯선 문제 앞에서 목표부터 따져 가며 생각하는 지식 기반 수행, 배워 둔 절차를 상황에 맞춰 꺼내 쓰는 규칙 기반 수행, 그리고 몸에 밴 동작이 의식의 개입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기능 기반 수행입니다.


숙련된다는 것은 행동이 수행 단계가 점차 짧아진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머리로 따지던 일이, 절차를 따르는 일이 되고, 마침내 손이 알아서 하는 일이 됩니다. 이는 사실 축복입니다. 기능 기반으로 도는 행동은 빠르고 정확하고 힘이 들지 않으며, 덕분에 사람은 주의라는 귀한 자원을 다른 곳에 쓸 수 있습니다. 제임스도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일상의 세부를 자동의 손에 넘길수록 정신은 더 높은 일에 풀려난다고 썼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습관은 사회의 거대한 플라이휠이며, 가장 소중한 보수적 장치다."(윌리엄 제임스, 『심리학의 원리』, 1890)


다만 이 축복에는 계약 조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기능 기반 수행은 주의를 끈 채 달립니다. 조건이 어제와 같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문제는 조건이 달라진 날입니다. 주의가 꺼진 손은 달라진 조건을 읽지 못하고, 어제까지의 순서를 그대로 밟습니다.


💡 SRK 틀(Skill-Rule-Knowledge Framework) : 라스무센이 1983년 IEEE 논문에서 제시한 인간 수행의 세 층위입니다. 기능(skill) 기반은 자동화된 감각운동 수행, 규칙(rule) 기반은 저장된 절차의 적용, 지식(knowledge) 기반은 낯선 상황에서의 추론입니다. 세 층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한 작업 안에서도 오가며 작동합니다.



베테랑의 실수는 숙련의 그림자입니다


이 틀로 보면 초심자와 베테랑은 실수의 종류가 다릅니다. 초심자는 아직 자동으로 달릴 행동이 없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매 순간 주의가 켜져 있고, 실수는 주로 몰라서 생깁니다. 베테랑은 반대입니다. 아는 것에서는 틀리지 않지만, 자동으로 달리는 행동이 많은 만큼 포획 오류가 파고들 자리도 많습니다. 설비가 교체된 날, 배치가 바뀐 날, 오랜만에 복귀한 날, 비슷하지만 다른 두 작업을 오가는 날, 그리고 작업 중간에 전화와 호출이 끼어들어 손이 어디까지 했는지 놓치는 순간이 그 자리입니다.


그래서 베테랑의 실수는 역설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능력의 구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작동하는 방식의 그림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까닭은 대책의 방향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낸 베테랑에게 정신 무장을 주문하는 교육은 이 구조에 닿지 못합니다. 주의를 계속 켜 두라는 요구는 숙련의 작동 원리와 어긋나는 주문이고, 사람은 그 주문을 지킬 수 없습니다. 닿는 대책은 방향이 다릅니다. 자동으로 달려도 안전한 조건을 유지해 주는 것, 그리고 조건이 달라진 순간을 눈에 띄게 만들어 주의를 다시 켜게 하는 것입니다.


몸이 저절로 하는 행동은 조건이 어제와 같을 때 가장 안전하고, 조건이 달라진 날 가장 위험해집니다. 베테랑의 실수는 사람을 고칠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변화를 보이게 만들 문제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오늘, 어제와 다른 것 하나"를 소리 내어 확인해 보십시오. 장비, 자재, 인원, 순서, 날씨, 무엇이든 좋습니다. 다른 것이 없으면 몸에 익은 순서가 일하게 두면 됩니다. 다른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바로 그 지점에만 주의를 다시 켜는 것입니다. 자동성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성을 언제 꺼야 하는지 아는 현장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산업 플랜트 현장에서 작업자와 관리감독자가 기존 설비 가운데 오늘 달라진 붉은 밸브를 함께 가리키며 확인하는 모습. 숙련자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자동성을 없애기보다, 장비·절차·배치 같은 달라진 조건을 눈에 띄게 만들어 주의를 다시 켜는 안전 점검 방식을 표현한 이미지.

숙련자와 이런 점검 대화를 나누는 감독자의 코칭 역량이 필요하시다면, 세이프티온솔루션의 안전코칭 프로그램이 그 대화의 틀을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SAFER Coach 세인이와 함께 생각해 보기〕

  • 최근 우리 현장에서 베테랑이 낸 실수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의 탓으로 정리했나요?

  • 우리 현장에서 눈 감고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그 작업의 조건 가운데 최근 바뀐 것은 없나요?

  • 작업 중간에 전화나 호출이 자주 끼어드는 공정은 어디인가요? 중단된 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지 정해져 있나요?

  • 설비가 바뀐 라인, 오랜만에 복귀한 사람에게 우리는 무엇을 다르게 준비해 주고 있나요?

  • "정신 차려"라는 말 대신, 우리가 바꿔 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참고문헌〕

  • James, W. (1890).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Henry Holt.

  • Norman, D. A. (1981). Categorization of action slips. Psychological Review, 88(1), 1–15.

  • Rasmussen, J. (1983). Skills, rules, and knowledge; signals, signs, and symbols, and other distinctions in human performance models. IEEE Transactions on Systems, Man, and Cybernetics, SMC-13(3), 257–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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